설명 우계인(羽溪人)인데, 판중추 사성(判中樞 思誠)의 아들로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고려말에는 유장(儒將)으로서 많은 활약과 전공을 세웠다. 특히 1388년(우왕14)에는 강계원수(江界元帥)로서, 이철성 원수 홍인계(泥鐵城 元帥 洪仁桂)와 함께 선봉장으로 요동(遼東)에 쳐들어가 호군(胡軍)인 명(明)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돌아오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상을 하사(下賜)하였다. 이해 2월에 명(明)나라 태조는 철성(鐵城)이북은 본래 원(元)나라에 속해 있었으나 그 지방에서 물러 나가라 하기에 철령위(鐵嶺衛)을 두게 되었다. 여기에 불복하는 고려조에서는 요동을 공략하기로 결정하였다.
고려는 적극적으로 요동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조민수 장군을 좌군 도통사(左軍 都統使)로 삼고 이성계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삼아 요동을 공격하였으나 진격하는 이성계는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고려조를 뒤엎은 것이다.
조선조 이태조는 의거를 이르켜 군대를 철수 시켰으며 개국 후에 이억에게 도평의사사겸 의흥친군위 동절제사(都評議事司兼 義興親軍衛 同節制使)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소백산(小白山)아래에 있는 순흥(順興)땅에 은거하였다. 이태조(李太祖)가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아니 하므로 특별히 교지(敎旨)를 내렸는데 교지에 이르기를「내마하에서 어렵고 위태로움을 우릅쓰고 나의 오늘이 있음이 너의 공(功)아님이 없으니 원종공신 일등에 녹(錄)하게하고 전장과 노비를 내림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신하로서 어찌 이태조가 하사(下賜)한 공물(貢物)을 내가 받겠는가 생전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아니 하였다. 이리하여 이 일대에는 각 고을에서 보내온 곡물이 해마다 쌓이고 쌓여 큰 노적가리가 여기 저기 아홉 무더기나 도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아홉 무더기가 쌓인 이 일대를 속칭 구두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이때부터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이억공의 묘는 영풍군 단산면 병산리 화석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형 » 호 : 영보/순흥 도촌 » 시대 : 조선시대
설명 우계인(羽溪人)으로 밀직부사억의 현손이요, 군자갑 경창의 아들로서 1435년(세종17) 양주(楊洲)에서 태어났다.
단종(端宗)이 세조(世祖)에게 양위(讓位)할 때 그의 나이가 21세 였다. 관란 원공호(觀瀾 元公昊), 어계 조공여(漁溪 趙公旅)와 더불어 원주 치악산(原州 雉岳山)에 있는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고, 관직인 평시서령(平市暑令)을 버리고 도촌(桃村)엔 은거 하였다. 거실(居室)을 지었는데 3면의 벽이고 북쪽을 향해 창문이 있으니 창을 향해 앉으면 반드시 북쪽을 향하게 되고 북쪽은 곧 영월(寧越)이라 단종(端宗)의 능침(陵寢)이 있는 곳이다.
돌아 가실때까지 서울에 가시지 않고 곧은 절의(節義)로서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의 거처하던 거실인 세마 늘은 이광정은 공북헌(拱北軒)이란 편액을 달았고 창설 권두경(蒼雪 權斗經)은 천인실이라 이름 지었다.
세조(世祖)는 등극하기 전부터 교분이 두터운 터이라 여러번 식물을 하사하여 힘써 기용하려 하였으나 나아가지 아니 하였다.
사림(士林)이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배향하였는데, 고심당 조정융(苦心堂 趙廷融)이 찬한 상향축문에「고요한 심지(心志)는 자취가 없으나 완부(頑夫)는 절조있는 고결한 사람으로 인도 하는데 힘이 미쳤으며 부춘산하(富春山下) 동강(桐강江)에서 낚시질 하던 엄광(嚴光). 호. 자능(號 子陵)과 같은 고결한 행적이 있고 표리(票里)로 돌아간 도잠(陶潛), 연명(淵明)과 같이 맑은 풍도(風度)가 있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공은 증 이조참판(曾 吏曹參判)에 추서 되고 금성대군(錦城大君), 이보흠(李甫欽),이여빈과 같이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으며, 공주(公州)에 있는 동학사에 숙모전(肅慕殿)에 배향 되었다.
........................................................................................ ■ 염태호: 이석 님, 이만 어르신의 자료를 파주염씨 홈페이지 사랑방에 올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님께서 종횡무진으로 선조님의 발자취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염태호 올림 (yumth@unitel.co.kr) -[11/13-16:31]- ........................................................................................ ■ 염태호: 양경공 정희계 문중자료 중 이만에 관한 기록입니다. -[11/14-08:59]-